운명을 거스른 삶

               1. 운명(運命)을 거스른 삶.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파아란 하늘에 쌍무지개가 어우러져 높은 하늘은 더욱 높은데, 꾀꼬리 뻐꾸기 그리고 이름 모를 온갖 새(鳥)들은 저마다 목청을 가다듬어 노래하고, 만발한 난연(蘭蓮)을 비롯한 수많은 기화요초(琪花瑤草)는 한 줄기 바람에 하늘거리며, 소리 없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는 넓은 황금들판에 화려하고 품위 있게 잘 꾸며진 연단(演壇)은, 품격(品格)높은 주인공에 어울리듯 중후장대(重厚長大)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충분했다.

  사회자가 뭔가를 알리는 중간 중간에, 수많은 군중의 연호(連呼)와 환호가 너무도 우렁차게 울려 퍼져 마치 세상이 떠나갈 듯했지만, 무슨 일인지 도대체 영문을 몰라 그저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는데, 잠시 후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제각기 사각 모(帽)를 쓴 세 남녀가 연단에 모습을 들어 내는 것이었다.

  키가 비슷하게 헌칠한 두 남아(男兒)와 조금은 앳돼 어려 보이는 여아(女兒)를 앞에 세워놓고, 이번에는 허연 수염이 발끝까지 내려지고 희한하게 생긴 지팡이를 짚은 산신령(山神靈?)같아 보이는 어떤 이가,

  “김 ○○ ...”

이어 무어라고 소개하자, 군중들의 함성이 울러 퍼진 잠시 후 장내가 조용해진 후,

  “김 ◇◇ ...”

이어 무어라고 소개하니, 또 다시 군중들의 연호가 일고 나서 조용해지자 또,

  “김 ☆☆ ...”

이어 무어라며 소개는 끝나고, 군중들의 환호(歡呼)와 우레 같은 박수소리에 마치 산이 흔들리는 듯했다. ‘아니! 쟤들이.....’ 하는 마음과 함께, ‘얘들아!’ 손을 번쩍 쳐들며 부르다가 그만 잠을 깨고 말았습니다.

  1970년대 중반 무렵 어느 날, 아내가 꾸었다며 들려준 소위 꿈 이야기인데, 도무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뒤부터 우리들은 ‘둘째도 아들’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또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군(軍) 내무반장 복무시절, 역학(易學)을 공부한 신임사병 한 녀석이 중대와 대대를 제집 드나들듯 불려 다니느라, 내무반장보고 받기가 바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조금은 한가한 어느 날,

  “반장님도 한번 봐 드릴게요”

  “야임마, 냅도라이마! 좋다꼬 나오모 좋지만, 안 좋고로 나오모 기분 나쁘잖아 짜슥아!”

  “그렇다면 아들이 몇 명인지 나, 알려 드릴게요”

몇 마디의 질문과 함께 잠깐 동안 요리조리 살피더니,

  “아들은, 둘입니다”

  “딸은?”

  “딸은, 남의 식구가 되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는 과연 아들이 한 둘(1~ 2)쯤은 될 것인가 하면서도, 크게 믿거나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은 체 신경 쓰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얼마 후, 아내의 꿈에서 본 듯 둘째를 아들로 맞았습니다. 결국 셋째를 낳게 되면 딸인데, 그 이후부터 셋째는 낳지 말자고 아내를 졸랐습니다.‘셋째(女息)를 낳지 말자’는 가장 큰 이유는, 필자와 똑 같은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바 있었고, 두 번째 이유는 둘도 제대로 못 먹이고 못 입히는데 어떻게 셋까지 끼울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로서는,

  “이모도 없고 언니도 동생도 없어 외로우니, 딸은 꼭 낳겠다”

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시집에서 있었든 좋았든 이야기도 자매(姉妹) 혹은 이모들에게 자랑하기도 또한 하고 싶을 것입니다. 반대로 고부간의 갈등이나 시집살이의 서러움도 자매 혹은 이모(姨母)들에게 하소연하기도 또한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므로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친정부모님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딸을 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고 양가 어른들이나 가족들을 상대로 하소연을 하다보면 서로 가슴에 상처의 골만 깊어지겠지요. 자신의 주변에, 여자라고는 없어 너무나 외로워 딸을 낳자는 아내를 달래느라 애를 먹으면서, 갑론을박과 우여곡절 끝에 결국 셋째(女息)는 낳지 않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랬으면 당시, 정부정책(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대로 가족계획(避妊)이라도 잘 실천했어야 했지만, 그렇지도 못했기에 알게 모르게 중절수술로 여식(女息)을 포기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가족계획(避妊)이 제대로 실천된 상태에서 포기했다면, 차례를 기다리고 있든 녀석(셋째)의 혼(魂)은 인간 세상에 태어날 기대도 하지 않았을 텐데, ‘이 때다!’하고 찬스를 잡아 찾아든 그 녀석(셋째)을 인위적인 포기로 인하여, 안타깝게도 생명을 빼앗은 결과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녀석(셋째가 될 혼)에게 무엇으로 보상하고 뭐라고 위로해야 하며, 어떻게 사죄해야할지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가슴이 미어집니다. 차라리 태몽 되로 운명을 받아들여 세 남매를 키웠더라면,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테지요.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필자에게 있으며, 또한 그 업보(業報)도 피할 수 없이 감당해야 할 멍에라는 것을, 천번 만번 수긍하고 인정합니다. 다시 한번 그의 명복과 아울러 훨씬 더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기를 기원하는 것도 물론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개인적인 숱한 역경과, 가족 구성원의 모든 시련도 이로 말미 암이라고 믿고 있으며, 앞으로 또는 내세(來世)에서라도 감당해야할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늘의 일은 오늘 마무리한다’는 심정으로, 현세(現世)에서의 일은 현세에서 마무리 할 수는 없을까? 고심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대안을 찾아보았습니다. 만약 지금 이 시점에서라도 인위적으로 포기되는 태아(胎兒)를 구할 수만 있다면, 합당(合當)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어깨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누구하고도 상의나 의논도 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지 않습니까. 최소한 하나 이상의 혼(魂)은 구(救)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결국 대안이라는 것도, 얼토당토않은 공염불(空念佛)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필자에게 닥칠 미래의 모든 고난도, 당연히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또 감수할 각오입니다.

  결과적으로 필자는 세 남매를 키웠어야 할 운명을 거슬러, 고집불통(固執不通)의 독단적인 삶을 영위(營爲)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끼로 발등을 내려찍고 싶을 정도로 후회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자식 탐(貪)이 나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며 운명을 거슬렀다는, 아니 운명을 거스럼으로 인하여 기대에 부풀고 희망에 가득 찬, 죄 없는 녀석(胎兒)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책임을 자청(自請)하는 것입니다.

  “애야! 이런 나를 절대로 용서하지 말어라!”

그러고 난 얼마 후부터, 그때 왜 ‘나중 언젠가는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을까 또, 옛 어른들 말씀 중에,

  “자식은 지 먹을 것은, 지가 가지고 태어난다”

는 말을 귀담아 두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난 후에는 이미 지나간 일일뿐이었습니다.

  이렇듯 무지몽매(無知蒙昧: 아는 것이 없고 사리에 어두움)한 과오(過誤)를 진심으로 사죄(謝罪) 합니다. 아내를 졸라 셋째를 포기하게 한 독선을 사죄(謝罪) 합니다. 하나(一)이상 수(數)개의 생명을 빼앗은, 살생을 진심으로 사죄(謝罪) 합니다. ‘…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무지(無知)를 사죄(謝罪) 합니다. ‘… 지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든 어리석음을 진심으로 사죄(謝罪) 합니다.

  “… … …”

  "이제 와서 어쩌리, 말해서 무엇 하리!"

참으로 안타깝고 애닮아 잊고 싶지만,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너무나 큰 과오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자녀수를 제한하는 가족계획이 아니라, ‘어떻게 낳아 어떻게 기를 것인가’하는 방향으로 정(定)하고 또한 권(勸)하는 한편, 아울러 오래 전부터 우리 집 가훈(家訓)도 ‘후회하지 않을 오늘을 살자’라고 정했습니다.

 

  

by 다사치 | 2009/09/02 07:31 | 운명을 거스른 삶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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